제 50호(4-5월) | 음악과 전쟁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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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정민 작성일21-06-01 09:58 조회1,721회 댓글0건본문
음악과 전쟁에 대한 소고
이정민(미추홀 오페라단 부단장)
I. 서론
전쟁터에서도 음악은 흐른다. 삶의 모든 현장에서 존재하는 것이 소리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소리는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죽하면 ‘귀르가즘’ 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귀’를 간지럽힌다는 ‘귀르니즘’이란 ‘귀’와 ‘오르가즘’의 합성어로 귀로 느끼는 소리의 느낌을 말한다. 그만큼 음악에는 태교에 좋다는 피아노 소리도 있고 이는 실제로 태아의 아이큐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사고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주고 또한 뇌파를 느리게 만든다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 교향곡’은 인간의 의식을 베타파에서 알파 영역으로 바꾸어 놓는 효과가 있어 듣는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기민함을 준다고 한다. 또 음악은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은 혈압을 내려주며 맥박과 심박동의 안정을 느낀다고 하니 심각한 상황이나 힘든 상황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따라서 사람이 피곤함을 느낄 경우나 잠을 못 자는 불면증일 때 음악을 통해 큰 도움을 받곤 한다. 게다가 공포스러운 상황일 경우 만약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실제로 느끼는 공포의 정도가 훨씬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듯이 사람은 음악을 통해 공감 능력이 향상되고 늘 음악과 소통을 하며 살고 있다.
음악을 평생 업으로 삼아 온 나는 늘 전쟁과는 거리가 먼 삶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었다. 그러나 나의 유학 시절 또는 5년여의 외국 생활 동안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나의 국적을 알면 늘 묻는 질문이 있다. 전쟁의 불씨를 안고 살고 있는 휴전국인 한국,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에서의 삶은 위험하지는 않는지 또 분단국가 출신으로 생각하는 조국의 의견 같은 얘기를 듣고 싶어했었다.
내가 겨우 아는 사실은 신화의 세계에서 군신은 아레스이고, 전쟁의 여신은 아테네, 신화에서는 아테네가 더 유명하지만, 이 땅에서는 전쟁이란, 거의 역사와 공부 모든 것이 남성의 영역이라는 것인데..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유혈진압과 무자비한 탄압으로 무수한 폭탄이 터지고 있는 내전이 있음에 나의 음악으로 내 기도로 모든 참혹함이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악’ 과 ‘전쟁’이라는 이 묵직한 두 개의 키워드에 끌려 가보려 한다.
II. 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음악과 음악가
전쟁이란 국가와 같은 정치적 집단 간의 투쟁으로서 대규모의 무력충돌을 수반하는 적대적 행위라고 명명되어 있다. 전쟁에는 대표적으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같은 세계의 질서를 위해 벌어진 전쟁도 있고 한국전쟁과 중일 전쟁 같이 한 국가가 한 국가를 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총력전, 남오세티아 전쟁 같은 말 그대로의 제한적으로 수행하는 제한전, 지금도 자주 일어나고 있는 내전 등이 있다. 공식적인 전쟁은 아닐지라도 민간인들 사이에서 무장단체가 숨어 공격하는 게릴라전 등도 있다.
전쟁과 관련한 음악으로는 단연코 이 음악이다. 20세기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로 독재자에 대한 경멸과 공포를 비웃는 듯한 지극히 냉소적인 작품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 이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침공을 받아 봉쇄된 도시 레닌그라드에서 이 작품을 작곡했던 그는 “잠시 쉬는 동안 화가 나서 거리에 나가면 내가 이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라며 쇼스타코비치의 심리적인 표현이 가득한 이 작품은 처음에는 네 개의 악장에 전쟁, 추억, 조국의 광활함, 승리라는 부제(제목)를 붙였지만 지워버렸다. 아마도 제목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이 음악의 내용을 훨씬 다양한 상상력으로 받아들여질 거란 생각 때문이겠지.. 어쨌든, 독일 나치는 레닌그라드를 약 900여일 동안 포위했고 그 동안 모든 음식과 연료 공급을 차단하였다 한다 하여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마이크로필름으로 해외로 보냈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고향인 레닌그라드에게 헌정한 이 교향곡은 청중에게는 이전에는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상징적인 작품으로 인식되어 졌다. 이런 작품이 탄생하는 뒷 배경은 다음과 같다. 독일이 872일간이나 레닌그라드를 봉쇄 하는 동안,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처절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었다 한다. 이 때 쇼스타코비치는 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포성이 들리는 가운데 악상을 떠올려 이 곡을 만들었다 하며 뼈만 앙상히 남은 레닌그라드 교향악단 단원들은 극도의 빈곤함에 먹을 것이 없어 벨트와 가방을 끓여 먹은 적도 있고 이런 상황에서도 재능기부 연주회를 열어 시민들의 심신을 달래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인간다움을 지키려고 문을 끝까지 닫지 않았던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이 도서관의 열람실에 책을 읽다 펴 놓은 채로 굶어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숙연해진다.
이제 클래식 작곡가들의 전쟁에 관해 얽힌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관현악법의 대가이자 ‘볼레로’라는 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그의 나이 39살이 되던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20세에 이미 군 복무를 마친 라벨이었지만, 다시 군 입대를 자청했고 입대를 피할 수도 있었는데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라벨은 조국을 지키기 위한 마음으로는 입대를 할 수 없는 161cm의 작은 키와 50kg 도 채 안 되는 체중 때문에 신체검사 부적합으로 재입대를 거부당했지만, 라벨은 포기하지 않고 이로부터 2년후 운전병으로 지원해 기어코 재입대를 한다.
라벨은 열악한 전쟁 환경 속에서 발에 동상이 걸리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며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전역을 하게 된다. 이 때 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으로 인해 라벨은 한동안 작곡 활동을 하지 못했고 그러던 중 마찬가지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쪽 팔을 잃어버린 피아니스트 친구 비트켄슈타인이 자신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에 라벨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친구를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곡이니 난이도가 좀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곡은 왼손만으로 오른손의 연주까지 감당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곡이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두 번이나 입대를 하고 전쟁 중 팔을 잃은 친구를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는 등 여러모로 라벨과 제1차 세계대전은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엔 전쟁같은 음악가 집안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슈트라우스를 이야기할 때 늘 함께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슈트라우스 집안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요한 슈트라우스 1세 와 2세 이름이 같고, 1세는 2세 요한 스트라우스 아버지임)로 초기 빈 왈츠 확립에 크게 기여를 하며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웠다.
요한 슈트라우스1세는 아들이 셋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첫째아들), 요제프 슈트라우스(둘째 아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셋째 아들) 이다. 그리고 아버지까지 이들 넷은 모두 음악가이다. 모두 음악가이니 하나로 똘똘 뭉쳐 화목하게 음악을 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아들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아주 격하고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나마 취미로 음악을 배우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조금이라도 전공자 수준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면 벼락같이 화를 내며 아들의 몸에 깃들여 있는 음악을 제거하겠다며 채찍으로 아들들을 후려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다.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바람이 나 집을 나간 후, 아들들 중 가장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엄마의 음악 공부 지원에 힘입어 자유롭게 음악을 하며 빠르게 성장해 나갔고 장남 슈트라우스 2세 악단의 데뷔무대가 수도 빈의 근교에 있는 유명한 도박장이자 무도회장이었던 ‘돔마이어 카지노’였고 이곳은 바로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자주 음악회를 열던 아버지의 홈그라운드였고 빈의 언론들은 ‘슈트라우스 vs 슈트라우스’ 라는 자극적인 제목들로 부자간의 경쟁을 부추겼고, 이에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다시는 그 곳에서 공연을 하지 않겠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분노를 드러냈다고 한다.
장남 슈트라우스 2세의 데뷔무대는 보란 듯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명성을 키워나갔다. 이후 아버지 슈트라우스 1세가 죽고 아버지의 악단까지 인수해 자신의 악단에 흡수시켜 그 규모를 키운 장남 슈트라우스 2세는 결국 아버지의 인기를 넘어 선 빈 최고의 인기스타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 이다. 적어도 빈에서만큼은 모차르트보다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이 더 자주 연주되었다고 하니 실로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알 수 있다.
또한 모차르트와 리스트(Mozart and Liszt), 브람스와 리스트(Brahms and Liszt) 라는 말은 영어로 술 취했다는 의미로 쓰인다. 후자가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이런 말이 생겨나고 옥스퍼드 사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가만 보면, 대작곡가들은 음주를 정말 사랑하는 듯싶다. 그들이 음악을 작곡해야 하고 대중 앞에서 초연을 하고 또한 직접 연주를 할 때 얼마나 전쟁 같은 창작의 고통이 있었을지 그 마음이 다 헤아려지지는 않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대영제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영국 작곡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생각난다. 1902년, 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서 화려하게 연주되었고 대영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선율이 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곡이고, 나도 다양하게 연주를 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 따라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영국의 침략과 약탈을 당했던 나라들과 부족들의 두려움과 슬픔이 느껴지고 이 감정들이 나에게로 몰려들어 마음이 미어지는 듯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III. 결론
맺음말은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밥 딜런(Bob Dylan)의 이야기로 갈음하고자 한다. 밥 딜런이라는 이름은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팝 문화는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그가 쓴 노래 가사는 정치, 사회,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으며 단순히 팝 뮤직에 국한 되지 않고 1960년대 이후 기존 주류 문화에 반발하는 카운터 컬쳐(counter culture) 확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고 “위대한 미국 노래 전통에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하였다”가 수상 이유였다.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그의 노래 ‘바람에 실려 있네(Blowing in the wind, 1963)’ 와 ‘세상이 변하고 있네(The times they are a changing, 1964)’는 미국 인권과 반전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바람에 실려 있네(Blowing in the wind) 가사를 들여다보면 다음 같은 뜻을 읽을 수 있다.
Yes, n’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 얼마나 많은 폭탄들이 오가야 그것이 영원히 금지 될 수 있을까?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 사람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 사람은 얼마나 여러번 고개를 돌리고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t see?
-> 보이지 않는 척 외면 할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 답은 불고 있는 바람 속에서 날아가고 있다네
딜런을 ‘저항의 상징’으로 만든 이 노래의 내용은 전쟁, 평화, 자유에 관한 대답이 바로 네 눈앞에 부는 바람처럼 “명백하다” 라는 뜻일 수도 있고 바람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즉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노래는 듣기에 편한 노래지만 가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 우리에게 비슷한 대상을 찾는다면, 1970-80년대 양희은, 한대수, 김민기 등이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 분들의 원조격일 밥 딜런은 반전과 사회 참여 메시지가 분명한 가수다. 요즈음, 우리의 바람은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을까? 갑자기 그룹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가사가 떠오른다. 그 가사는 이렇게 끝을 얘기한다. Anyway the wind blows(아무튼 바람은 불기 마련이니까). 우리의 자아, 사랑 그리고 우리 삶의 전쟁 그래도 인생은 흘러가는 것 같다. 전쟁 속에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가지고 느꼈던 것처럼 바람은 불고 있다.
<참고문헌>
엄진숙, 『음악과 전쟁』, 서울: 예성출판사, 2009.
장영진, 『세계역사 결정적 비밀 3: 음악이 전쟁에 끼친 영향 외 76건의 숨겨진 진실』, 서울: 북아띠, 2020.
Vulliamy, Ed, Louder Than Bombs: A Life with Music, War, and Peace,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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