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바다의 역사 > E-저널 2016년 ISSN 2465-809X(Online)

 

▶E-저널 2016년 ISSN 2465-809X(Online) 목록

E-저널 2016년 ISSN 2465-809X(Online)

제12호(06월) | 세계사를 바꾼 바다의 역사

페이지 정보

Written by 서양원 작성일16-07-06 10:53 조회1,665회 댓글0건

본문


세계사를 바꾼 바다의 역사

서  양  원(충남대학교 대외협력추진위원회 위원) 

 

Ⅰ. 들어가는 말


  고대부터 바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식량공급원으로서, 세계의 곳곳을 연결시켜 왔던 통로로서, 그리고 에너지와 광물자원의 보고로서 바다는 인류에게 큰 효용가치를 제공하였다. 다 알듯이 세계역사의 전환점에는 언제나 바다의 사건들이 있어 왔다.
 
Ⅱ. 해양력의 역사
 

1. 해군의 태동과 역할

해군을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의 페니키아인들이었다. 활발한 해상 무역활동을 해온 그들은 최초로 원양항해를 한 사람들이다. 당시의 항해술로 육지에 근접하여 항해하다 보니 부근 해적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 때문에 페니키아인들은 선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장거리 항해를 할 때에는 선박에 군인들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역사에 해군이 등장한 시초이다. 바다의 이용이 증가하면서 해군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초기의 역할이었던 해적으로부터 선박을 보호하는 활동 이외에도 적국을 침공하는데 필요한 병력과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바다를 통하여 군수지원을 제공하는 임무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전쟁의 양상은 이 시대 해군의 역할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 준다. 페르시아군은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해안에 가깝게 진격하고, 그 가까운 곳에 해군을 함께 이동시켜 병력을 보충하고 필요한 군수지원을 받으며 진격하였다. 기원전 480년에 Salamis해역에서 있었던 그리스와 페르시아 함대의 해전에서 페르시아가 패하면서 해상으로부터의 군수지원을 받지 못한 페르시아 군은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결국 제국이 멸망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2. 포에니 전쟁과 해상 통제의 중요성
  카르타고와 패권 다툼을 하던 로마는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지중해의 해양제패를 달성한 것을 계기로 거대제국을 건설한다. BC264년의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해전을 승리하며 해상통제권을 장악한다. 지중해에 대한 로마의 해상통제 효과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드러난다. 로마에 복수를 꿈꿔 왔던 한니발 장군은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로마 공격에 나섰지만 로마의 해상통제 때문에 피레네 산맥, 알프스 산맥을 거쳐야 하는 멀고 험난한 지상 원정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해상으로 이동할 경우 240Km 밖에 되지 않는 해상접근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무려 10,000Km에 달하는 먼 거리를 우회하여 이동하였다. 기습공격에 성공한 한니발은 로마를 굴복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해군이 카르타고군의 최대 약점인 군수지원을 해상에서 차단하게 되자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의 복귀 후 벌어진 전투에서 카르타고가 패하면서 제2차 초에니 전쟁은 끝이 났다. 제3차 전쟁에서 로마군의 해상 원정이 성공하며 120년 가깝게 계속 되었던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로마의 지중해에 대한 해상통제는 로마제국의 번영을 유지하는 중요한 밑받침이 되었다. 포에니 전쟁 역사를 읽고 감명을 받은 마한이 쓴 책 ‘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미국인들의 해양사상을 일깨우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3. 영국과 스페인의 해양패권 경쟁
  콜럼버스 이후 15세기 말 바다는 스페인의 것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양의 보화가 해군력 건설에 투자되면서 스페인의 바다에 대한 독점이 시작되었다. 한편 당시의 영국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제 막 바다에 눈을 뜨고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자 했던 영국에게 스페인의 독점은 큰 걸림돌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략선 제도를 만들었던 것은 재원이 빈곤한 영국정부가 나름대로 해군전력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양국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스페인이 한자동맹과 조약을 맺어 독립전쟁을 하고 있는 네덜란드 북부와 영국과의 무역망을 약화시키려고 한 것 때문이다. 이에 맞서 영국은 북부 네덜란드와 넌 서치 조약을 체결하고 군사동맹을 맺는다. 영국이 네덜란드지역 전쟁에 개입하자 펠리페는 영국에 대한 침공을 결정한다. 무적 함대를 엄호부대로, 네덜란드 주둔군은 상륙작전 부대로 지정되었다.


  무적함대가 영국해안에 도착한 것은 1588년 7월 이었다. 상륙군이 도착하지 않자 무적함대는 칼레 항에 입항하여 밀집 진형으로 정박하여 대기하고 있었고 영국해군은 밀집해 있는 함대에 대하여 화공을 감행하였다. 무적함대는 화공으로부터 닻줄을 끊고 피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함대가 재집결하기 전에 영국해군의 공격을 당하자 북해로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회피한 무적함대는 스페인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으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돌아 본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출항 당시 133척에 달하였던 무적함대의 수는 복귀 했을 때는 65척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 결과 영국의 영향력은 증대되었고 식민지 확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재정적인 문제로 영국과의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적함대 자멸 이후 영국은 적극적인 해외 식민지 확장을 추진하였으며 이를 위해 함대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대규모 함대를 편성하여 스페인에게 분할되었던 대부분의 스페인 해외식민지를 장악하였다.

 

4. 트라팔가 해전과 대영 제국
  넬슨 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함대는 대서양에서 활동하고 있을 프랑스 해군을 탐색하고 있었다. 범선시기에는 양측이 평행으로 항진하며 함포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전투가 진행되는 것이 관례였다. 서로 종렬진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측이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전투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었다. 프랑스 함대를 발견한 넬슨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를 이번 해전에서 격멸하여 다시는 영국 해군에 도전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병진전투’ 개념을 채택하지 않고 적의 대열을 양분하여 분리된 적을 각개 격파할 수 있도록 적진을 2열 종대로 돌진하는 전법을 사용했다. 넬슨제독의 전법은 의도한 대로 성공하였다. 연합 함대는 침몰 1척, 포획 또는 파괴 18척의 피해를 입었다. 한편 영국함대는 비교적 가벼운 피해로 끝이 났지만 넬슨 제독은 프랑스 저격병의 총탄에 쓰러졌다. 영국이 완벽한 승리를 거둠에 따라 이후 프랑스 해군은 다시는 영국에 대하여 대규모 전투를 벌이지 못하게 된다. 영국 침공계획은 취소되었고, 영국의 해양지배에 대한 프랑스의 도전은 트라팔가 해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나면서 Union Jack이 펄럭이는 곳에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5. 철선시대의 해양력 경쟁과 일본의 등장
  일본이 문호를 개방하면서 해군의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양의 주요 국가로 등장하게 되었다. 조선의 지배를 두고 1894년 청일 양국 간 벌어진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이 났고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의 뒤처리를 하였다. 일본은 이 승리로 동양의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로 등장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차지한 요동반도는 삼국간섭을 불러왔고 러시아가 뤼순 항을 조차하면서 또 다른 전쟁의 불씨를 가져온다.


  1904년 2월 일본군이 뤼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 육군은 고전 끝에 승리했다. 뤼순에 있던 러시아 해군도 모두 일본 해군의 총공격을 받고 항구 안에 봉쇄당했다. 육전에서의 패배를 해전에서 만회하려고 태평양함대의 전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던 발틱함대는 5월 27~28일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함대에 격파되어 전멸하게 된다. 이 해전은 서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서구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백인우월주의를 약화시켰다. 이 승리로 일본은 세계 6번째의 해군국가가 되었다. 일본이 승리에 도취됨으로써 일본이 ‘세계2차 대전’의 악몽으로 이르는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으나 어떻던 일본은 이 전쟁을 계기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6. 세계 제1, 2차 대전과 미국의 해양력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강대국의 해군력 경쟁으로 촉발된 양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해양강국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 참전을 통하여 국가가 보유한 해양력에 의한 해양통제 장악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양차 세계대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해양전략을 국가전략의 핵심 현안으로 인식하도록 했으며, 전후 미국이 해양전략을 국제질서 개편을 주도하기 위한 주요요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은 현대에 이르러서 어느 나라도 그 해양력을 따라 올 수 없는 세계 최고의 해양강국이 되었다.
 
Ⅲ. 세계 해양력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바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의 결과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왔다. 바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새로운 세계사의 흐름을 만들고 그 사건을 주도한 국가에 의해서 세계의 앞날이 결정되는 역사가 반복되어 왔다. 바다에서의 주요 사건들과 세계 역사 흐름과의 상관관계를 비교해 보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로 세계사의 흐름은 해양력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세계의 역사를 주도하려는 국가는 강력한 해양국가이어야 한다. 둘째로, 세계의 역사를 주도해 온 국가의 해양력과 그 중심요소인 해군력 강화는 오로지 그 국가 지도자의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세계의 역사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의 해군력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셋째, 해군력을 현장에서 운용하는 해군 지도자들의 자질 또한 바다에서의 사건 결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바다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제 우리 해군을 세계 제일의 강력한 해군으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해양강국으로 만들어 갈 국가 지도자를 기다리자.
 
<참고 문헌>

방위사업청.  『오늘의 군함이 있기까지 변화한 군함의 역사』. (인용일자: 2013. 3. 27)
윤 석 준. 『해양전략과 국가발전』. 한국 해양전략연구소 학술총서. 2010.
콜린 그레이. 임인수 정호섭 공역. 『역사를 전환시킨 해양력』. 한국 해양전략연구소 학술총서. 1998년 6월
리차드 하딩(Richard Harding). 김현수 역. 『해양력과 해전(1650-1830년)』. 한국 해양전략연구소 학술총서. 2002.
폴 케네디(Paul Kennedy). 김주식 역. 『영국해군 지배력의 역사』. 한국 해양전략연구소 학술총서. 2010.
이정수.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 공옥 출판사. 199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70건 5 페이지
제13호(07월) Written by 최기출 | 08-10 | 1391 해군은 전략적 소통능력을 강화하자! 인기글
​ 해군은 전략적 소통능력을 강화하자 ! 최기출 ( 한국해양안보포럼 대표 ) ​ Ⅰ. 서언 지난 7월 8일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계획을 발표하였고, 13일에는 그 배치지역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성산포대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미 …
제13호(07월) Written by 김진무 | 08-08 | 1723 북한 핵탄도미사일 위협의 실체와 사드(THAAD) 인기글
북한 핵탄도미사일 위협의 실체와 사드(THAAD)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진무 Ⅰ. 서론 ​ 지난 1월 6일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2월에는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로켓을 발사하면서 핵개발에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3월 초에 김정은은 ’핵탄두 폭발 시험 실시‘ 및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모든 미사일 발사‘를 지시…
제12호(06월) Written by 서양원 | 07-06 | 1666 세계사를 바꾼 바다의 역사 인기글
세계사를 바꾼 바다의 역사 ​ 서 양 원(충남대학교 대외 협력추진위원회 위원) Ⅰ. 들어가는 말 ​ 고대부터 바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식량공급원으로서, 세계의 곳곳을 연결시켜 왔던 통로로서, 그리고 에너지와 광물자원의 보고로서 바다는 인류에게 큰 효용가치를 제공하였다. 다 알듯이 세계역사의 전환점에는 …
제12호(06월) Written by 조용진 | 07-06 | 3837 함정 적외선 스텔스 적용 및 기술동향 인기글
함정 적외선 스텔스 기술의 발전 동향 조용진 ( 동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 적외선 이란? &lt;그림 - 1&gt; Electromagnetic Wave Spectrum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 가운데 가시광과 마이크로파 사이의 파장…
제12호(06월) Written by 양금희 | 07-05 | 1844 남중국해 갈등과 수중드론의 배치 인기글
남중국해 갈등과 수중드론 (underwater drone) 의 배치 양금희 ( 제주대학교 / 이어도연구회 연구위원 ) Ⅰ. 서론 ​ 강대국들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다. 강대국들은 핵무기를 사용하여 선제공격을 하였을 때 상대방이 제2격…
제12호(06월) Written by 정진근 | 07-05 | 2558 중국의 해군전략 변화와 미래전망 인기글
중국의 해군전략 변화와 미래전망 정진근 ( 충남대 초빙교수 , 국제정치학 박사 ) 정재호 ( 모스크바대 국제관계학 박사 ) Ⅰ . 들어가며 Ⅱ . 중국의 해군전략 변화 Ⅲ . 중국의 해군작전 확대 Ⅳ . 결언 : 중국 해군의 …
제12호(06월) Written by 안광수 | 07-05 | 2298 한국 해양안보의 주요 쟁점과 정책방향 인기글
한국 해양안보의 주요 쟁점과 정책방향 안광수 (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문연구위원 ) 순 서 ❍ 해양안보의 의미와 중요성 ❍ 한국 해양안보의 주요 쟁점 ❍ 시사점과 정책방향 …
제11호(05월) Written by 심동보 | 06-08 | 1883 기적을 낳은 전투 인기글
기적을 낳은 전투; 북한 무장간첩선 격침 36주년의 회고 심동보(예 해군준장) 36년 전인 1980년 12월 2일 새벽에 일본 영해에 근접한 대마도 서남방 해역과 남해도에서 각각 해상전투와 육상전투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침투시킨 무장 간첩선이 격침되고 특수 공작원 9명이 간첩선과 함께 수장되거나 육상에서 사살되고, …
게시물 검색

HOME  |   BOOKMARK  |   BACK  |   CONTACT US  |   ADMIN
TOP
주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국가안보융합학부 1103호) / 대표전화 : 042-821-6082 / 팩스번호 : 042-821-8868 / 이메일 : komsf21@gmail.com
Copyright © 한국해양안보포럼. All rights reserved.[본 사이트는 개인정보 수집을 하지 않습니다.]